킹덤 청년 집회는 끝났습니다. 

지난 3박 4일동안 이곳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서글펐습니다. 

L.A에 돌아가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프린스턴 인근 호텔방에서 이 글을 씁니다.

2008-2009년까지 이곳 프린스턴 신학 대학원에서 두 학기동안 설교학(Th.M)을 공부했습니다. 

추억이 묻어 있는 이곳에 집회에 오셨던 강사들을 모시고, 오늘 오후 함께 걸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을 거닐었고, 자주 가던 커피숍, 아이스크림 집, 

늦은 밤 거닐던 대학가의 골목길, 설교했던 밀러 채플의 높은 강단 위에 다시 서 보았습니다. 

방학이라 학생들은 없고, 석양이 짙어가는 텅빈 교정을 거닐며 8년 전 그때 했던 고민이 떠 올랐습니다.

박사 학위를 얻기 위해 학업을 계속해야 할까? 

5년동안 도서관에 감금될 걸 생각하니 숨이 막혔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목회 현장에서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말하는 목회자들의 말이 아팠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귀한 것들을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잘 전달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교회는 또 다른 단절의 현장이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는 성도들의 삶으로까지 흐르지 못했습니다. 제 탓입니다.

교회에서의 활동이 생활 현장에서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성도들의 말이 아팠습니다. 

이제 내가 단 위에서 입으로 말한 메시지를 “이런 거라고” 

삶으로 보여 줘야 나의 설교가 마무리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떠나 찾아간 일상의 현장(Street)에서 난 목공 작업대를 강대상 삼았고, 

나무 먼지 묻은 작업복을 목사 가운 삼았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어느새 놓친 듯합니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에 말수는 줄어 들었고, 

냉소와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내가 붙잡아야 할 구명조끼가 어디 있는지 허우적거릴 뿐입니다. 

왜 신학교를 떠나고 교회를 떠나 작업복을 몸에 걸쳤던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 교정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내게 어디까지 표류해 간 거냐고 비웃는 듯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날 왼쪽 손바닥에 박힌 가시는 아직 뽑지 않았습니다. 

그 가시가 집회 내내 나에게 고통을 상기시켜 주었지만, 아픔을 뽑아 내선 안될 것입니다.

잠시 입으로 설교하는 손 쉬운 호사를 누리고 이제 다시 가시 박힌 손바닥을 마주 잡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일상 속으로 성령님이 나를 내 몰아가십니다.

나는 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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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