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요한복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9.11 요한과 대화하다 (9)
  2. 2010.08.24 요한복음 1: 뜸들이기 (4)
  3. 2010.03.04 요한복음 번역 1장 (5)

매일 매일 사도 요한과 대화 나누고 있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다. 
그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듣고 내가 알던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조율해 나가는 중이다. 
그는 헬라어로 말하고 나는 그의 말을 해석하느라 처음 미국와서 영어 공부 하듯이 원어와 씨름하고 있다. 

Karl Barth 가 그렇게 말했다지.
"Tell me your christology, and I will tell you who you are."
(당신이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내게 알려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 
"예수가 누구인가?"
이 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 저마다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 질문 앞에 서면 다른 모든 질문은 사소한 것이 되고 만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기 표현'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자기 드러냄'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하나님의 자기 나타내심'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인간의 몸이 되셨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거울로 보듯 희미했던 하나님의 참 모습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가 예수 안에서 드디어 충족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2, 14을 자유롭게 번역하다.)

우리에게 보인바 되기 위해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계셨던 주님께서 그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십자가 사건은 영적인 핵분열의 사건이 아닐까요?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던 날, 오후 세시에 어둠이 임하였다는 그 표현을 이해할만도 합니다. 원형 관계(Arche Relationship)의 단절이 발생하는 순간 우주라도 경련하며 그 빛을 잃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계속해서 요한복음 초반에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요 2:4, 7:30, 8:20)고 하신 주님께서 드디어 "나의 때가 되었다"(요 12:23, 17:1)고 하신 것은 십자가 지실 것을 암시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목적지로 삼고 한마리 독수리가 수직 하강하듯,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셔서 하나님이 아니신 살덩이(사르크스)가 되셨고, 그 하강 여행의 가장 낮은 목적지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신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진하게도 서글픈 뭉클함이 내 영을 휩쌉니다. 
 
모든 설교의 결론이 일상에서의 적용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설교자의 주장은 구태의연해 보입니다. 
설교의 진정한 끝맺음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신비 앞에 할말을 잃고 경외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설교의 근본적인 지향점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예수를 바로 알면 그 자체로 인해 자연스레 삶이 변화할 거란 생각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용기를 얻습니다.  
나 같은 죄인조차 친구라 하시는 주님의 한 없이 넓은 팔에 차마 안기지는 못하고 무릎을 꿇습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 묘사된 둘째 아들처럼 말입니다. 

내 고향은 어디일까요? 
이곳 롱 아일랜드에서의 광야생활을 접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때가 오겠지요. 
그러나 어느 곳에 살게 되든지 지향하는 고향은 하나님의 품(Bosom of the Father)이 될 것입니다. 
고향이라지만 제대로 가 본적인 없는 나는 그곳을 모릅니다. 
다만 그곳으로부터 오신 분으로부터 고향 소식을 들을 뿐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요 1:18 새번역)

요한에게 길을 물으니 예수님을 가리키고 예수님께 길을 물으니 아버지를 가리키시는데 당신이 곧 길이며 목적지라 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시며...


 







Posted by 김성환

Introduction

이 세상에 요한복음 만큼 소중한 책은 없습니다. 왜냐햐면 요한복음이 다루고 있는 내용 만큼 소중한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언컨데 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책을 한권 고르라고 한다면 요한복음을 선택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때문에 잠시 망설일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것과 같은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전 경기병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7:46 새번역)

요한복음을 공부하다보면 과연 예수님처럼 말한 사람은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신에게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나는 깨달음을 조명하는 빛을 알고 있다고, 나는 생명의 길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 인류의 스승들은 많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 스스로를 향해 내가 곧 길이라고, 내가 곧 빛이라고, 내가 곧 생명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예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 가운데 말입니다. 


C.S. 루이스의 많이 알려진 논증을 다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그 누구도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같은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 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p. 93-4, 홍성사)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이 아침에 우리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소중한 내용이 담긴 가장 소중한 책을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요한복음을 공부하는 순간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감추어졌던 비밀, 인류가 알아야 할 그 진리를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 알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Posted by 김성환

요한복음을 작년 말부터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면서 읽으니 말씀이 더욱 깊이 내면화되면서 내것이 되는 느낌입니다. 헬라어원문(NA27th)을 Main Text(source)로 삼고 영어성경은 NASV, ESV, 한국어 성경은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개정판, 캐톨릭 성경을 참고하여 작업하고 있습니다. 직역보다는 내가 이해하는대로 해석한 자유로운 번역입니다. 아래와 같은 식으로 요한복음을 틈틈히 끝까지 번역해 보려고 하는데 한번 읽어보시고 조언들을 바랍니다.

 



요한복음 번역


1장

예수님의 정체 (1-18절)

시간이 있기 전부터 말씀이 사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대면자이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 분으로 인해 만들어졌고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그를 통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은 그 분으로부터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생명은 인류의 빛입니다. 그 빛이 어둠을 향해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입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므로 모든 사람이 자신을 통하여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다만 그 빛을 증언할 뿐 그 빛이 아니었습니다. 참 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이 세상에 들어와 인류를 비추입니다. 그가 세상에 사셨습니다. 세상이 그 분으로 인해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분이 자신의 영역에 오셨지만 인류는 그를 밀쳐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그 분을 맞아들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딸과 아들이 되는 특권을 베푸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욕정의 결과로 인한 혈통 관계나 사람의 의지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산된 것입니다. 


그 ‘말씀’이 몸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고 거주하셨습니다. 그 분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님의 실체였습니다. 모든 은혜와 진리는 그 분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요한이 그 분에 대하여 외쳤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내가 증언하여 말씀드린 그 분입니다. 나보다 늦게 무대에 등장하셨지만 사실은 이 분이 주인공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왜냐면 그 분이 무대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는 그 분에게서 우리는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은혜’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윤리를 전해주었지만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의 맛보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태껏 그 어느 누구도 육안으로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심장이신 아들께서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19-28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요한은 머뭇거림없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요? 엘리야요?”

“아니오.” 

“당신은 오기로 한 그 예언자요?” 

“아니오.”

“허허 참, 도대체 당신은 누구란 말이요? 우리가 무슨 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지 속시원히 당신의 정체를 말해 보오.” 

드디어 요한이 대답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예견한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외침’입니다. 나의 외침은 오직 이것, 여러분은 모두 손님인데 이제 주인이 오시니 마음채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낸 이들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질문합니다. 

“자네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내가 주는 세례는 물로 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분이 여러분 가운데 서 계십니다. 나는 그 분보다 먼저 여러분 앞에 나서서 외칠 뿐입니다.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그 분의 참 정체를 안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의 건너편에 위치한 베다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Posted by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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