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확히 지금 내 나이에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지요. 

3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1985년 10월 16일, 다섯 식구 이민 가방을 잔뜩 끌고 로스엔젤레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아버지가 백인 검색원들에게 영어로 말씀하시던 기억. 
그땐 아버지가 영어를 무척 잘 하시는 줄 알았어요.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먼 타국으로 터전을 옮겨갈 결단력이 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까봐 몹시 섭섭해 하셨지요. 

모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싶은 때가 있는 걸까요. 
지금은 그 때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아버지가 공장을 하셨던 노르만디 길에서 저도 공장을 하게 되었어요. 
거의 30년 전, 아버지가 매일 출퇴근 하셨던 그 공장을 지나 저도 매일 출퇴근 합니다. 
먼 길을 돌아 아버지가 넘어진 그 자리에 서서 

저만의 노르만디 상륙 작전을 힘겹게 펼치고 있어요.

제가 10학년 때, 그 공장 주차장에서 처음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 주셨지요. 
28년 전, 생전 처음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옆에 앉으셔서 이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보라고 하셨던 말씀, 

그리고 서서히 자동차가 앞으로 움직이던 기억,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주차장을 매일 운전하며 지나갑니다. 
지금은 자동차 정비소가 된 그 공장을 지날 때마다 

창문으로 30년 전 내 나이의 아버지가 땀흘리며 일하시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서리 집사 한명 없는 집에서 태어나 교회의 20년 목회현장은 

제게 끝까지 낯설었어요, 이민 보다 더. 

목수로서 공방에서 일하는 지금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합니다. 
쇠를 다루는 법, 쇠를 폴리쉬 해서 광을 내는 법, 도금하는 법, 

에폭시로 파이버 글라스를 접착하는 법, 납땜을 깔끔하게 하는 법, 

각종 공구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난 “모태 기술자”였던 걸 이제 깨달아요. 

밤새 아버지와 백열전구 밑에서 은도금 하던 그 밤을 그리워합니다. 
계셨더라면 선반으로 어떻게 쇠를 깎는지 물어보았을텐데, 

몰딩할 때는 어떤 쇠를 써야 하는지, 도금액은 어디서 구하셨던 건지 물어보았을텐데…

좋은 사람 만나 딸 둘을 낳았어요. 
한번도 못 보셨지요. 아버지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어머니! 
어머닌, 그간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결코 말로 다 할 수가 없네요. 
나이 50에 과부가 되어 이제 할머니가 된 당신의 아내를 상상하기 어려우시겠죠.

오늘 아버지의 24주기 기일이네요.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Posted by 김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