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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위(Mode)에 관하여

by 김성환 2008. 7. 7.


이제 3일 후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가는 건지,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7개월은 제게 건강을 추스리는 시간이었고, 교회의 본질을 묵상하는 시간이었으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으며, 독서하고 글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장을 위한 안식이었습니다.

 

한국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그렇습니다.  

또 다른 그리움을 마음 속에 한 무더기 안고 떠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곳곳에 녹음이 짙어지니 들풀 속에서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느꼈던 풀냄새의 기억이 스나미처럼 몰려옵니다. 풀잎 사이사이 계시처럼 숨어있던 메뚜기가 내 마음 속에 돌아왔습니다.

이 향기를 두고 떠나야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1.5세 이민자의 실존적 외로움을?  

 

이곳에서 나의 영성은 분명 한단계 도약하였습니다.  

이전에 집착하던 것들로부터 좀더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보다 좀더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설교에 대하여, 목회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사는 것에 관하여, 인생의 여정을 순례의 과정으로 보는 것에 관하여, 깊은 생각들을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나는 특별한 바램도, 거창한 비전도, 소위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곳,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 바로 지금 여기가 나의 목적이고, 나의 열정을 풀어놓아야 할 장소이며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굳이 어떤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부질없어 보입니다.

소위 대형교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보았으므로 애초부터 그 쪽으로는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은 잘한 것일 텝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모든 가능성을 향하여 나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매 순간순간, 모든 곳곳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가능성의 연속이며 연장이라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가슴 뿌듯한 일이 인생의 낙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근에 깨달은 벅찬 감동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층위(Mode)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저의 오랜 고민을 해결해 준 무척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오랫동안 제가 고민한 문제는 어떻게 24시간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나는 그리스도인처럼 운전하며, 된장찌개를 먹어도 그리스도인처럼 먹으며, 잠을 자도 그리스도인처럼 잘 수 있을까? 어떻게 주일과 월요일이 같은 삶을 살까? 어떻게 하면 삶의 현장 속에서 어느 곳에서든 매 순간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어떻게 생활과 신앙이 이분화되지 아니하고 통전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이라는 접근법으로 그 질문에 답하려 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답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층위(Mode)에 관한 것이라는 말의 의미는 쉽게 말하자면 행위의 유지가 아닌 층위의 유지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찻잎에서 찻물이 우러나오듯, 모든 행위는 층위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층위가 변하면 행위도 변하게 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몽롱한 모드가 있는가 하면, 피곤한 모드, 나른한 모드, 정신이 맑은 모드, 활기찬 모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영성 모드, 혹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식 모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며칠 전 얼핏 머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전 그것이 제게 주신 하나님의 영감이라고 믿어집니다. 이러한 생각을 좀더 발전시켜보렵니다. 이 깨달음이 제게 큰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동하려는 노력보다 본질적인 것은 어떤 상태, 모드, 혹은 층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영성훈련(Spiritual Formation)이라는 것도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지속적인 영성모드유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서 있는 그 어느 자리에서든지 고요한 영성의 상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대면하는 상태, 어떤 상황에서든지 평화적 임재로 존재하는 상태, 맑게 사고하며 기도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며, 비전이며, 바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몸이 가벼운 순례자가 되는 즐거움은 짐을 줄이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뿐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 상태를 만끽하는 즐거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