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묶여 지내고 있다.
도약하는 구도자가 되기보다는 직업인으로 굳어가는 듯한 이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한다.
내가 추구하는 목회와 교회상을 귀하게 여기고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음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땀 흘리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름때를 벗겨내던 때, 나는 행복했다.
묶여 있던 잉어를 넓은 물에 놓아주던 때 나는 얼마나 경이로움에 몸을 떨었던가!
쓸모없어 버려진 목재를 다듬어 용도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던 때 나는 기뻤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한강 도로를 달릴 때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로 달려간 것이었다.
여동생은 멀리 중국으로 떠났다.
늘 자리를 지켜야 했던 장남의 눈은 해바라기를 닮았다.
떠오르는 얼굴들...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윤동주가 살아 있었더라면 레돈도비치의 소박한 커피숍에서 용정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청해 들었을텐데...
여전히 손목은 시큰거리고, 눈은 침침하다.
프라하의 뒷골목 풍경과 로마의 가구공방들은 여전한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