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수의 삶 (2016년 4월부터)

버팀목

by 김성환 2016. 7. 6.


엘살바도르 한적한 시골 마을,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집에서 맞닥뜨린 낡은 식탁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공간마다 특화된 기능이 부여된 다양한 가구들에 둘러 싸인 삶에 익숙한 내 눈에 단순한 

그 가구의 존재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숭고함이었습니다.  식탁, 조리 작업대, 아이들 책상... 

다역을 수행하며 그 가구는 지구 한 켠 작은 공간에 네 다리로 버텨 서서 파송된 가정에서 

자신의 소명을 묵묵히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가구는 사람이 만들지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가구는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며 같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성경이 성경을 읽는 자를 읽듯.

아마도 그 나무는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생을 자라다가 제재 되었을 겁니다. 

한 곳에서 일생을 수행하는 나무는 늘 나의 방랑벽을 나무라는 듯 합니다.

세월의 손 때가 훈장처럼 옷 입혀진 그 나무 가구는 흔들리면서도 흙으로 돌아 가기를 

주저하고 서 있습니다. 자신이 파송된 가족들을 위해 버텨 주고 있는 것입니다. 

녹슨 몇개의  나무로 고정된 채, 

지구의 중력에 저항하며 무너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식탁은  예수를 닮았습니다.

일생 나무를 다루고 수 많은 못을 박았던 목수가 나무에 못박혀 있는 십자가 이미지에서 

난, 스스로 버팀목이 된 그 분을 봅니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못에 찔림을 상처로 여기지 않고 버티는 힘으로 여기셨습니다, 그 분은.

모든 흔들리는 존재들을 위해 버팀목이 되신 분, 
그래서 사람 (人)은 그 분을 버팀목 삼아 사는 존재인가 봅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요한복음 21:18, 새번역)

나무는 언젠가 자신이 저 가정에 식탁이 될 줄 상상했을까요.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을 쓰러뜨리고 땅 위에 가로 눕게 되었을 때 나무는 어떤 운명을 

예상하고 있었을까요.  날카로운 톱에 의해 켜지고 드러난 속살이 대패로 다듬어지고 재단되어 

못에 박힐 때, 나무는 “바라지 않는 곳으로 끌려 가셨던” 그 분의 삶을 자신이 재현하고 있음을 

알고 기꺼웠을 겁니다.

아, 모든 나무는 버팀목입니다.

나와 당신도, 누군가에게.



"버팀목에 대하여"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 복 효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