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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 (2011년 1월-2016년 3월)

길 잃은 영감님

by 김성환 2012. 3. 10.
설교의 영감이 떠오르질 않아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노아의 홍수> 본문으로 한번 쯤 더 설교하려고 하는데 설교 방향을 잡지 못해 이러고 있다. 
지난 주 설교는 앞부분이 실험적이었던데 비해 나름 효과가 있었지만 적용 부분이 미흡해서 아쉬웠다.

어느 목사님이 그랬던가, "주일설교만 없으면 목회가 즐거울텐데..."  라고.

글만 안 써도 되면 소설가가 되는 것이 즐거울텐데...
요리만 안 해도 되면 주방장 되는 것이 즐거울텐데...
빨래만 안 해도 되면 세탁소하는 것이 즐거울텐데...

남은 24년 동안 매주 8페이지 설교를 마감일 넘기지 않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3시간 째 앉아 있는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벌써 16년째 반복되는 상황이지만 좀처럼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훙수>와 관련된 작은 발견들을 엮어 한편의 설교를 만들려면 일관성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주제가 분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설교 한편에 주제가 분산되는 것을 각오하고 여러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만들까, 아니면 넘어갈까?
방주의 구조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음을 강조한다면...
현대 교회가 방주를 모델로 할 것인가, 아니면 (비슷한 모양이지만) 말구유를 모델로 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거대 홍수의 흔적을 어떻게 언급할까?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타난 홍수의 이야기를 구약의 노아의 홍수와 어떻게 연결지을까? 
에베레스트 산이 노아의 홍수 때 잠겼을까? 
노아가 오직 말씀에 의지해 100년 동안 배를 지었던 사실에 근거해 히브리서 11장과 연관지어 그의 믿음을 강조할까? 
그러면 너무 주일학교 설교처럼 되지 않을까?

한 시간 뒤까지 설교의 본문과 제목이 나와야 하는데 영감이 떠 오르질 않는다.

바벨탑의 이야기로 넘어간다면 창세기 1-11장에 나타난 죄, 심판과 은혜의 반복을 주목하는데 촛점을 맞출 것인가? 
하나님이 내려오셨다는 대목에 집중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마누엘로 내려오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촛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바벨에서의 언어 흩으심과 오순절 사건의 언어 모음을 비교하는데 주목할 것인가?
문명 자체를 비판하지 않으면서 도시 짓기에 담겨 있는 인간 죄악의 절정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이런 설교에 한 주간 노동에 시달린 교인들이 흥미있어 할까?
 
성령님께서 설교의 영감을 주시지 않으면 설교 행위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