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07년 10월~2008년 8월)

성냥팔이 소년이 되어...

김성환 2008. 5. 26. 22:17


책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수십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기독교서적은 물론 일반교양서적, 과학서적, 그래픽디자인, 도자기 유약, 세계문학, 문화비평서, 여러 성경번역, 등등...

토랜스에서는 설교준비하느라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요. 민감한 상황에서 한달에 30번 넘는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이 저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설교 많이 하는 것이 결코 본인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노는게 이리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난 노는 체질인 거 같습니다.
남들은 근질근질해서 일주일 이상 못 논다는데 난 평생 놀아도 좋을 것만 같습니다.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민목회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냥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 그것이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7월 즈음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서 프린스톤 신학대학원에서 2009년 5월말까지 두 학기를 공부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껏 내가 깨달은 소중한 것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동부에서의 생활을 통해 겪어보지 못했던 미국의 이면을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후에는 어디든지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면 목숨 바쳐 목회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읽고, 글쓰며, 교인들과 공부하면서, 교인들과 작은 마을 이루어 자연과 더불어 땀 흘려 노동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듭니다. 한국에서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교회가 있다면 이곳에서 일평생 사역하는 것도 귀한 일이겠다고 말입니다. 나중에 미국에 돌아갈 때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보며 왠지 정겹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생기고, 고난 가운데 동고동락하고픈 마음도 듭니다. 내 한가족 혼자 풍요롭게 살자고 미국으로 도망가는 거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미국에서 주변인물로 22년을 살았습니다. 이곳에선 모두가 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부럽습니다. 
청소하시는 분들도,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도 삶은 버거워도 모두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난 부럽습니다.

군대 다녀온 젊은이들, 고3 지옥을 헤쳐나온 대학생들, 고실직율의 사회에서 생존해 가고 있는 내 또래 사람들과 자녀의 사교육으로 등골이 휘는 이 땅의 학부모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음이 죄송합니다.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가 동네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나 홀로 다리를 저느라 그 피리소리의 행진에 합류하지 못한 듯한 느낌...

저녁 퇴근길 값싼 대포집에서 정치인과 시국을 안주 삼아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들이 난 솔직히 부럽습니다. 곱창집 유리창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성냥팔이 소녀처럼 부러운 눈으로 난 바라봅니다. 고난도 함께 겪는 고난은 풍요로운 곳에서의 외로움보다 견디기 쉬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