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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된다는 것

by 김성환 2010. 10. 22.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목사도 그 중 하나다. ‘성직’이라는 이름을 붙여 굳이 이 일을 다른 직업과 구분하려는 이도 있으나 포스트 종교개혁 시대에 그런 의도는 구태의연하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반응의 결과물일진대 이 세상에 성직 아닌 직업이 있을까? 


나는 목사라는 직업을 택하였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고 믿는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설교자가 되고자 하였다. '목사'라고 할 때 그 타이틀은 좀더 광범위한 교회 관리자로서의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다. 나는 목사의 그러한 여러 기능 가운데 설교자로서의 기능에 끌렸다.  

설교하는 일이 나의 천직이자 순명이라고 믿고 있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았던 박칼린의 언론 인터뷰에서 뮤지컬 음악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직업에 대한 무한애정을 과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며 내가 택한 설교자라는 직업은 직업으로서 어떤 매력을 지니는 걸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 울타리 안과 밖에서 비추어지는 '목사'의 이미지는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설교자는 외로운 직업이다. 온종일 기도 가운데 설교 준비와 성경공부 준비로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쏟아내야 한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연속이다. 하루 이틀이 아닌, 일주일 내내, 한달 내내, 일년 내내, 죽는 날까지 그러하다. 사회, 경제, 시사, 문화, 정치 등등 인간 세상에 관련된 모든 현상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또한 성경에 코를 박고 살아야 한다. 설교자는 신학과 인류학의 경계에 서 있다. 하나님과 사람... 그 두 사이를 연결하는 Bridge Builder로서 설교자는 존재한다.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가!


목사처럼 다양한 인간 삶의 현상들을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목사가 있다. 출생, 결혼, 임종, 장례... 그 순간 순간,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모든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목사다. 9.11이 터졌을 때 모두가 경악하여 누구 하나 말하기를 주저하였지만 세상을 향하여 유일하게 외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설교자들이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주일아침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설교자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가! 나는 그때 확신하였다. 세상의 진정한 소망은 설교에 있다고...(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은 정치도, 경제도, 테크놀로지도, 문화도 아니다. 겉으로는 그런 듯 보이지만 말이다. 세상의 진정한 변혁자는 그 어떤 정치/경제의 거물이나 문화 아이콘도 아니다. 물론 그들의 영향력이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하나님 눈에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변혁자들은 중보기도자들과 설교자들이다. 중보기도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설교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피곤에 절어 졸고 있는 교인들일지라도 그들 앞에 성경을 펼쳐 놓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담대히 사자후처럼 외칠 수 있는 무명의 설교자들이야말로 빈들판 수풀 사이에 드문 드문 피어있는 약초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싶다. 설교자들이야말로 질식하는 세상에 연결된 산소호흡기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숨을 공급하는 인공호흡자들이다. 


그들은 일평생 재물을 모으지는 못할 것이며, 맵시 좋은 옷도 입기가 요원할 것이다. 일생 검소하게 살아야 하며좋은 집으로 옮겨가는 인생의 즐거움도 포기해야 하리라. 그러나 보라, 설교자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아닌가! (고후 6:9-10)


감사하며, 더욱 성경의 깊은 생수물을 뜨러 나아간다. 

얕은 물에서는 볼 수 없는 어종을 깊은 물에서는 만나게 되리. 

 

이 직업에 무한자긍심을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