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07년 10월~2008년 8월)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을 만나다

김성환 2008. 4. 5. 01:00


경동교회로 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한국교회에서 제가 주목하는 목사님 중 한 분이십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그 분의 서재에서 (여느 목사님들과 달리 미국보다는 독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회력에 관해서, 교회력에 따른 성경본문(Lectionary)에 관해서, 교회력으로 설교하기에 관해서, 교회력으로 예배에 관해 음악담당자와 미리 계획하기에 관해서, 교회 출판물의 디자인에 관해서 신나게 대화나누었습니다.

현대교회의 소위 열린예배라는 것에 대해 저는 항상 회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배의 목적이 말씀의 내면화에 있지 않고, 내면의 카타르시스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설교와 성가대 찬양이 무관하게 엮어지는 것, 교회절기와 상관 없는 설교자 마음대로의 본문 선정 등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럴 경우 무성의한 즉흥적인 예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좀더 교인들에게 편안한 예배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교회가 예배의 경건성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교인들의 편의를 의식하는 교회의 풍토가 예배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의 예배가 일종의 공연이 되어가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합니다.

아울러 디지털 문화가 예배 의식과 예배자들의 영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치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분별한 LCD 사용, 설교시 설교자의 얼굴을 화면에 비추이는 것, 예배 순서와 성경본문과 찬송가 가사를 모두 LCD로 화면에 띄워 쾌적한 예배환경을 만드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배에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살려내어 좀더 오감 전체를 활용한 Tangible 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열린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에서 그 대안을 구현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가 바로 경동교회입니다.
경동교회의 교회력에 충실한 예배는 너무 전문화되어 있다거나, 엘리트주의라든가, 또 다른 공연이라든가, 자칫 따분할 수도 있다는 얘기들도 있지만 예배 하나 하나에 쏟는 정성과 교회력을 중시하는 그 근본 정신에 있어서 현대교회들이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목회를 하게 되면 교회력에 충실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국장로교단을 비롯 여느 교단에서 나오는 Lectionary가 목회현장에서 쓰기에 부적합할 때가 많은 것이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위에서 주어지는 본문이 개교회의 특수상황을 반영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력에 충실하되, 설교는 Lectionary 가 아닌 교회력 사이 사이 몇주간 진행되는 시리즈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가대 지휘자와도 미리 음악을 선정할 수 있고, 교인들도 미리 준비해 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본문도 좀더 깊이 살펴볼 수 있겠구요.

매주 설교자가 임의로 설교본문을 선정해야 하는 상황처럼 설교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시리즈 설교에 대한 확신은 깊어 갑니다.

경동교회와 같은 최고의 교회건물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교회로서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 건물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의 인테리어는 그 교회의 신학을 반영하는 법입니다. 각종 사치를 제거하고, 최소한도로 소박하고 실용적이며, 깊은 의미를 지닌 교회 장식으로 시간의 때와 공동체의 흔적이 묻어날 수 있는 건축자재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를 형광등처리된 플라스틱으로 만든다거나 대량생산의 느낌이 드는 자질과 니스칠을 한다거나 베니어판으로 코팅한다거나 하는 교회장식의 가벼움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뿐이겠습니까? 성찬잔, 테이블, 강대상, 교인석, 등등 교회의 신학이 반영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소박함'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음악에 관해서는 좀더 다양한 악기를 예배 안으로 포용시켜야 한다고 절실하게 생각합니다. 현재처럼 피아노와 오르간만으로 진행되는 예배도 좋겠지만 소박하더라도 좀더 획기적인 다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경동교회는 교회 출판물에도 깊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부분에 관심이 많은데 각종 예배 순서지와 안내책자, 행사 포스터, 각종 교회 인쇄물 들을 만드는 전임 디자이너가 있다고 합니다.
이민목회하면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지만 흑백사진을 많이 활용하여 절제미를 추구한 차분한 느낌을 주고, 아름다운 한글 글꼴체를 단순하게 활용하여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교회 출판물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교회의 신학을 표현하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 출판물의 디자인에 관해서는 캐톨릭교회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박종화 목사님께서는 친절하게 구약본문과 서신서, 복음서의 세 본문을 어떻게 엮어서 한편의 설교를 만들어내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털털하시고, 심지가 굳은, 멋있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과의 대화에 발동이 걸려 두서 없이 써내려갔습니다.
시간이 되면 하나 하나 차분히 정리해야겠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귀한 것을 배웠습니다.

"순서 하나 하나에 정성이 담긴 예배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