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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4

새 생명의 십자가 어제는 하루 종일 얼바인에 있는 어느 교회의 현관과 본당에 십자가를 설치하고 영아실에 평상마루를 만드는 작업을 했어.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니스로 매끈하게 스프레이 된 십자가는 이 시대의 값싼 영성을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거든. 그저 매끈하고 예쁘기만한 십자가에게서는 참기 힘든 가벼움을 느끼곤 해.버려졌던 나무를 두 손으로 쪼개고, 자르고, 파고, 깎고, 찍고, 닦고, 못 박고, 껍질을 벗기며 세상에 하나 뿐인 십자가를 만들었어.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십자가를 만들어 본다면 그 어느 누구도 예수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해. 작은 십자가는 현관에 걸려고 만든거야. 큰 나무 십자가 안에 작은 나무 십자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디아서 2:2.. 2016. 12. 6.
가로짓기 십자가 8년 전 이맘 때, 무명의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 때 난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설교학으로 Th.M 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학교 기숙사 아파트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며 CNN을 통해 선거 유세 과정을 지켜보고 오바마의 연설을 공부하듯 듣곤 했습니다. 그 때 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흑인 교수와 23명 남짓의 흑인 학생들이 있었고 나와 백인 여학생이 유일하게 흑인이 아닌 학생이었습니다.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다음 날 수업에 갔을 때 흑인 학생들이 진한 눈물을 흘리고 서로 포옹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나 또한 기득권 층에서 벗어난 소수 민족으로서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참 흐뭇했습니다. 그들의 눈물의 농도를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화사한 나비.. 2016. 12. 6.
아버지 아버지, 정확히 지금 내 나이에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지요. 3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1985년 10월 16일, 다섯 식구 이민 가방을 잔뜩 끌고 로스엔젤레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아버지가 백인 검색원들에게 영어로 말씀하시던 기억. 그땐 아버지가 영어를 무척 잘 하시는 줄 알았어요.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먼 타국으로 터전을 옮겨갈 결단력이 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제가 신학교에 갈까봐 몹시 섭섭해 하셨지요. 모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싶은 때가 있는 걸까요. 지금은 그 때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아버지가 공장을 하셨던 노르만디 길에서 저도 공장을 하게 되었어요. 거의 30년 전, 아버지가 매일 출퇴근 하셨던 .. 2016. 12. 6.
북한 어린이 겨울 신발 보내기 위한 자전거 타기 처음 공유라는 걸 해 보네요. 북녘 아이들에게 겨울털 신발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올 여름, 샌프란-엘에이 자전거 타기를 하지 못해 미안함이 마음 한켠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작은 손길 보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어두운 때일수록 작은 촛불 밝힙니다. 맞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꺼지지 않도록, 우리 함께 바람을 헤치고 힘차게 페달을 밟도록 해요.ReconciliAsian에서 주관하고, 제가 자전거 정비 및 길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행사에 누구든지 발 있는 자, 오십시오. 2016.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