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5'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2.05 새 생명의 십자가
  2. 2016.12.05 가로짓기 십자가
  3. 2016.12.05 아버지
  4. 2016.12.05 북한 어린이 겨울 신발 보내기 위한 자전거 타기


어제는 하루 종일 얼바인에 있는 어느 교회의 현관과 본당에 십자가를 설치하고 

영아실에 평상마루를 만드는 작업을 했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니스로 매끈하게 스프레이 된 십자가는 

이 시대의 값싼 영성을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거든. 

그저 매끈하고 예쁘기만한 십자가에게서는 참기 힘든 가벼움을 느끼곤 해.

버려졌던 나무를 두 손으로 쪼개고, 자르고, 파고, 깎고, 찍고, 닦고, 

못 박고, 껍질을 벗기며 세상에 하나 뿐인 십자가를 만들었어.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십자가를 만들어 본다면 

그 어느 누구도 예수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해.


작은 십자가는 현관에 걸려고 만든거야.
큰 나무 십자가 안에 작은 나무 십자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디아서 2:20)를 표현하기 위함이지. 

예배의 자리에 들어오는 자에게는 그 고백이 지불해야 할 입장료여야 하니까. 
십자가는 그저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각자의 어깨에 짊어져야 할 것이라고 외치는 저 나무 십자가의 소리를 

교회의 문턱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듣게 되기를 바래. 


나무를 쪼개보니 어쩜! 나무 중심에 혈흔처럼 붉은 결이 흐르고 있었어. 
“아, 너는 십자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나무였구나,”라고 나무에게 말해 줬지. 
그 말에 비로소 안도하는 나무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단다. 

내심 땔감이 될 걸 두려워했던게지. 

속으로 삭인 그 두려움이 혈흔의 결을 빚어낸 건지도 몰라.

본당에 건 십자가는 거의 사람 키 만해서 만드는 과정이 

마치 나무 속에 갖힌 사람을 조각해서 끄집어내는 듯 했어. 

교회는 십자가 뒤로 조명을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것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교회의 뜻대로 하고 나니 십자가는 빛이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내 편견 때문에 회피하고 있었구나 싶었어. 

노을 빛이 세상을 물들이듯, 저 빛이 교회 문을 넘어 세상을 물들이길.


십자가를 설치하고, 노년의 한 여성도가 빛을 발하는 십자가 아래 기도 드리는 것을 보았어. 

그 장면에 압도되어 뒷줄에 한참을 앉아 있었지.

요즘 기도가 잘 나오지 않는 난, 

그 자리에 앉아 대신 노래 한줄기 마음 속으로 읊조렸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빛 심히 쬐이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2.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때
나 위해 고생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때 내 맘에 큰 진리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3.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형체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관계없도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 뿐이라
십자가 뿐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교회의 이름이 “새생명”이더라.

새생명!

교회가 수치가 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저 수치의 십자가가 새 생명인걸 어찌 부인해.
















Posted by 김성환


8년 전 이맘 때, 무명의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 때 난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설교학으로 Th.M 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학교 기숙사 아파트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며 CNN을 통해 선거 유세 과정을 지켜보고 

오바마의 연설을 공부하듯 듣곤 했습니다. 
그 때 <African-American Preaching>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흑인 교수와 23명 남짓의 

흑인 학생들이 있었고 나와 백인 여학생이 유일하게 흑인이 아닌 학생이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다음 날 수업에 갔을 때 흑인 학생들이 진한 눈물을 흘리고 

서로 포옹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나 또한 기득권 층에서 벗어난 소수 민족으로서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참 흐뭇했습니다. 
그들의 눈물의 농도를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화사한 나비 넥타이를 메고 수업에 들어 오는 백인 중심의 학교에 부러 조화를 깨듯 

찢어진 청바지를 엉덩이 밑에 걸치고 칙칙한 노동자의 자켓을 입고 오는 그들의 저항 심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신대륙에 어떤 이들은 걸어서, 어떤 이들은 범선을 타고, 어떤 이들은 노예선에 실려, 

어떤 이들은 여객기를 타고 왔습니다. 모두가 이곳에서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살아야 마땅 하지만 

편견과 착취, 차별로 흑인들은 “Black lives matter!“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라는 

너무도 새삼스러워 민망한 구호를 외쳐야만 하는 야만의 시대를 우리는 목격하며 살아갑니다.


두 종류의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귀한 목재인 호두나무 (Walnut)로 흑인을 표현했고, 

길에서 주운 정체 불명의 팔레트 나무로 백인을 표현했습니다. 
백인의 얼굴이 흑인의 어깨에 흐느끼듯 머리를 깊이 묻고 있습니다. 

백인이 고개 숙인 각도는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안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흑인의 몸을 백인보다 더 크게 표현했고, 흑인의 팔이 든든히 백인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흑인이 백인들을 보듬어 주라는 의미입니다.  주도권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월주의, 편견, 무관심, 착취 속에 갖혀 있는 백인들도 측은히 여겨야 할 다른 차원의 노예이며 

건져져야 마땅한 존재임을 흑인들이 자매/형제로서 일깨워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피해 의식이 아닌, 그들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통해 

강자의 우쭐함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십자가가 어디에 자리를 잡고 걸리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십자가를 바라 보는 이들이 하나님의 탄식을 보게 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하얀 나무를 가로지르는 저 짙은 나무의 결이 벅찹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모든 경계를 가로 지르며 살라고 호출합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가로짓기의 사람으로 이 세상 살아요.


                                                                                                                                                                                                    


                                                                                   

                                                                                                              

                                                                                                                              

Posted by 김성환


아버지, 
정확히 지금 내 나이에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지요. 

3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1985년 10월 16일, 다섯 식구 이민 가방을 잔뜩 끌고 로스엔젤레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아버지가 백인 검색원들에게 영어로 말씀하시던 기억. 
그땐 아버지가 영어를 무척 잘 하시는 줄 알았어요.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먼 타국으로 터전을 옮겨갈 결단력이 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까봐 몹시 섭섭해 하셨지요. 

모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싶은 때가 있는 걸까요. 
지금은 그 때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아버지가 공장을 하셨던 노르만디 길에서 저도 공장을 하게 되었어요. 
거의 30년 전, 아버지가 매일 출퇴근 하셨던 그 공장을 지나 저도 매일 출퇴근 합니다. 
먼 길을 돌아 아버지가 넘어진 그 자리에 서서 

저만의 노르만디 상륙 작전을 힘겹게 펼치고 있어요.

제가 10학년 때, 그 공장 주차장에서 처음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 주셨지요. 
28년 전, 생전 처음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옆에 앉으셔서 이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보라고 하셨던 말씀, 

그리고 서서히 자동차가 앞으로 움직이던 기억,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주차장을 매일 운전하며 지나갑니다. 
지금은 자동차 정비소가 된 그 공장을 지날 때마다 

창문으로 30년 전 내 나이의 아버지가 땀흘리며 일하시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서리 집사 한명 없는 집에서 태어나 교회의 20년 목회현장은 

제게 끝까지 낯설었어요, 이민 보다 더. 

목수로서 공방에서 일하는 지금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합니다. 
쇠를 다루는 법, 쇠를 폴리쉬 해서 광을 내는 법, 도금하는 법, 

에폭시로 파이버 글라스를 접착하는 법, 납땜을 깔끔하게 하는 법, 

각종 공구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난 “모태 기술자”였던 걸 이제 깨달아요. 

밤새 아버지와 백열전구 밑에서 은도금 하던 그 밤을 그리워합니다. 
계셨더라면 선반으로 어떻게 쇠를 깎는지 물어보았을텐데, 

몰딩할 때는 어떤 쇠를 써야 하는지, 도금액은 어디서 구하셨던 건지 물어보았을텐데…

좋은 사람 만나 딸 둘을 낳았어요. 
한번도 못 보셨지요. 아버지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어머니! 
어머닌, 그간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결코 말로 다 할 수가 없네요. 
나이 50에 과부가 되어 이제 할머니가 된 당신의 아내를 상상하기 어려우시겠죠.

오늘 아버지의 24주기 기일이네요.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Posted by 김성환


처음 공유라는 걸 해 보네요. 

북녘 아이들에게 겨울털 신발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올 여름, 샌프란-엘에이 자전거 타기를 하지 못해 

미안함이 마음 한켠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작은 손길 보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어두운 때일수록 작은 촛불 밝힙니다. 
맞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꺼지지 않도록, 
우리 함께 바람을 헤치고 힘차게 페달을 밟도록 해요.

ReconciliAsian에서 주관하고, 제가 자전거 정비 및 길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행사에 누구든지 발 있는 자, 오십시오.




Posted by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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