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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아버지와 아들 사진 속 네 남자는 서로에게 아버지와 아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 ‘어머니’라 불리는 한 여인을 통해 생명을 부여한 아버지를 한 남자는 ‘아버지’로, ‘우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계관이고 살아 있음을 가능케 한 존재의 근원입니다. 그 분은 내가 서 있는 디딤돌입니다.“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물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이제 사진 속 세 남자는 흙이 되어 사라졌고 남아 있는 한 사람도 머지않은 어느날 그들과 합류하게 될테지요.오늘 내가 살아 있기 위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버지들이 연루되어 있었던 건지... 생각하니 전율토록 경이롭습니다. 커피숍 창 밖으로 주루룩 비가 내리는 이 아침, 나의 아버지가 눈물 맺히도록 그립습니다. 2016. 10. 27.
목공 교실 (1) 교회를 나오고 나서 그리운 것이 사람입니다. 목회할 땐 늘 사람들에 둘러 싸여 살다가 매일 혼자, 나무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사람이 그리웠습니다.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목공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계셔서 목공 교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대한 열정과 손으로 직접 뭔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누는 기쁨이 큽니다.목공 교실은 대량 생산된 공산품에 둘러 쌓인 소비자로 살아 가는 삶에 대한 작은 저항입니다. 손수 나무를 다듬어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요. 그것이 의 비전이기도 합니다.수강자들 모두 얼마나 정성껏 집중해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지 모릅니다. 목공 교실을 하게 된 것이 의 큰 기쁨입니다. . . (아래 사진들은 수강생과 수강생들이 만든 물건입니다.) 2016. 10. 27.
작은 기쁨 물고기 잡으러 바다에 다녀왔습니다.2년 만에 찾은 태평양 앞 바다는 그동안 수온이 높아져서 그 많던 해삼, 성게, 소라,문어는 찾아볼 수 없고, 수줍은 인어가 숨어서 바라보고 있을 것 같던 물풀 숲(Kelp Forest)이 사라졌습니다.바닷속은 여전히 상상하기 벅찰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합니다.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큰 물고기와 맞닥 뜨리면 숨이 멎을 것만 같습니다.살생의 기운을 감지하는 물고기들은 내 마음이 고요한 만큼 가까이 다가옵니다.욕심을 버리는 만큼 새로운 수중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맛있는 회를 맛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이 남가주 유배 생활의 작은 기쁨입니다. 2016. 10. 27.
건전지 십자가 이젠 손톱만한 전구조차 켤 수 없는 건전지가 되고 말았지만 소진되고, 탈진된 사람들이 모인 곳! 방전된 자아들이 모여 십자가 자아를 이루는 곳!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어. 방전된 건전지들이 모여 아무리 서로 병렬, 연결한다 한들그 무슨 세상을 전율 시키는 힘이 있겠어.9볼트로 살았던 이도 있고, 두 친구와 함께 작은 LED 손 전등을 비추는 일에 일생을 바친 1.5 볼트 AAA 건전지도 있지. 세상에서 어떤 힘을 행사하며 살았든지 이제는 모두 방전되어 용도 폐기된 건전지들. 그 유한한 생명, 이제 작은 십자가 나무관에 담겨 누워있지. 이것이 한국 교회의 자화상이 되지 않았으면 해. 다시 충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한 종교인들이 화석처럼 묻혀 있는 그런 곳 말야. 건전지의 소망은 그저 한번 더 재충.. 2016.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