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이맘 때, 무명의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 때 난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설교학으로 Th.M 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학교 기숙사 아파트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며 CNN을 통해 선거 유세 과정을 지켜보고 

오바마의 연설을 공부하듯 듣곤 했습니다. 
그 때 <African-American Preaching>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흑인 교수와 23명 남짓의 

흑인 학생들이 있었고 나와 백인 여학생이 유일하게 흑인이 아닌 학생이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다음 날 수업에 갔을 때 흑인 학생들이 진한 눈물을 흘리고 

서로 포옹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나 또한 기득권 층에서 벗어난 소수 민족으로서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참 흐뭇했습니다. 
그들의 눈물의 농도를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화사한 나비 넥타이를 메고 수업에 들어 오는 백인 중심의 학교에 부러 조화를 깨듯 

찢어진 청바지를 엉덩이 밑에 걸치고 칙칙한 노동자의 자켓을 입고 오는 그들의 저항 심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신대륙에 어떤 이들은 걸어서, 어떤 이들은 범선을 타고, 어떤 이들은 노예선에 실려, 

어떤 이들은 여객기를 타고 왔습니다. 모두가 이곳에서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살아야 마땅 하지만 

편견과 착취, 차별로 흑인들은 “Black lives matter!“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라는 

너무도 새삼스러워 민망한 구호를 외쳐야만 하는 야만의 시대를 우리는 목격하며 살아갑니다.


두 종류의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귀한 목재인 호두나무 (Walnut)로 흑인을 표현했고, 

길에서 주운 정체 불명의 팔레트 나무로 백인을 표현했습니다. 
백인의 얼굴이 흑인의 어깨에 흐느끼듯 머리를 깊이 묻고 있습니다. 

백인이 고개 숙인 각도는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안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흑인의 몸을 백인보다 더 크게 표현했고, 흑인의 팔이 든든히 백인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흑인이 백인들을 보듬어 주라는 의미입니다.  주도권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월주의, 편견, 무관심, 착취 속에 갖혀 있는 백인들도 측은히 여겨야 할 다른 차원의 노예이며 

건져져야 마땅한 존재임을 흑인들이 자매/형제로서 일깨워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피해 의식이 아닌, 그들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통해 

강자의 우쭐함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십자가가 어디에 자리를 잡고 걸리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십자가를 바라 보는 이들이 하나님의 탄식을 보게 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하얀 나무를 가로지르는 저 짙은 나무의 결이 벅찹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모든 경계를 가로 지르며 살라고 호출합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가로짓기의 사람으로 이 세상 살아요.


                                                                                                                                                                                                    


                                                                                   

                                                                                                              

                                                                                                                              

Posted by 김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