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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삶 (2016년 4월부터)

2016년 시카고 코스타 후기

by 김성환 2016. 7. 12.


비행기에 실려 한 주간 먼 곳에 다녀 온 나는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에 사로잡혀 쓸쓸한 나만의 공방에 갈 엄두를 못내고 있다. 

지난 5년간, 주일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설교 원고를 

마지막으로 다듬던 이 커피숍을 지난 3개월간 난 차마 찾아올 수 없었다. 

김유신의 말처럼 나의 낡은 차는 오늘 이곳으로 나를 몰고 와 앉으라 한다.

몇 자라도 적지 않으면 밀물처럼 흐르는 이 그리움이 

내 안에서 벗겨낼 수 없이 고체화될 것 같아… 몇 자 적는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의 대형 집회 후 베드로가 주님과 나누었던 이 대화는 

늘 쓸쓸한 나를 눈물 짓게 만드는 힘이 된다. 

베드로의 이 고백에 예수님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속으로 삭이셨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누군가 나를 떠난다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까? 

외롭지만 머무는 자, 

그로 하여금 그 분 곁에 머물게 하는 힘은 그 분께 있는 영생의 말씀이었다고 한다. 

그치지 않는 생명의 메시지…


며칠간 많은 ‘말씀’들이 있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노동과 수면 부족에 지친 나의 고막은 그 말씀들을 향해 떠 있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순전히, 나의 지친 심신 때문에 최첨단의 음향 시스템을 통해 전해지는 귀한 

내용들은 나의 고막 너머로 많이 주입되지 못했지만, 오랜 지병인 ‘성냥팔이 소녀 병’을 앓고 

있는 내가 주목한 것은 늘 그렇듯 주변(Margin)이었다.


하야오 미야자키의 만화 영화에 나올 듯한 시카고의 파아란 하늘과 뭉개구름, 

에드만 채플 앞 화단 속에서 특송을 불러 준 방울새와 팔락이며 바디 워십에 여념 없던 

호랑나비 두쌍, “나는 아픔이요” 라고 외치는 듯 붉은 조끼를 입은 간사들의 여간해서 쉽게 

들키지 않는 헌신이 내 시선에 포착되었을 때, 나는 여러번 먼 거리에 서서 먹먹함을 

느끼는 것으로 그들에게 감사를 전했더랬다. 


창조된지 족히 6000년은 더 되었을 청명한 시카고 밤 하늘의 수 많은 별들, 

그리고 7월의 신록을 나부끼는 나무들, 

아, 나무들!, 그들은 도끼와 망치를 들지 아니한 나를 향해 용서한다는 듯, 

경계하지 않는 몸짓으로 다정히 목수인 내게 손 흔들어 주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살아가는 피조 동료들과의 대화는 같은 모국어를 공유하는 동질성

때문에 더 더욱 애틋했고, <OPPORTUNITY> 라고 희미하게 쓰인 깃발이 되어 버린 

“학위(Degree)”를 얻기 위해 타국어로 힘겹게 공부하는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30대 중,후반 주부들의 소외감과 피곤함의 정도(degree) 가 느껴져 숙연했다. 

앞서 걷는 남편 뒤를 따라 스트롤러를 밀고 예배실로 들어가는 그녀들의 뒷 모습에서 

얼떨결 붙들려 십자가 끌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을 본다. 

외로운 타국에서 자녀를 양육하고, 남편을 돌보는 그들의 이름없는 “살림살이”가 어느 명문대 

박사학위 지 않은 Degree 가 되어 그들 영성에 깊이를 인증하는 세가닥 금줄이기를… 

그리고 마지막 날 새벽 미명에 어김없이 새롭게 밝아오는 하늘!

이것이 나로 하여금 코스타에 머물게 한 “영생의 말씀”이요 주강사였다.


찬란했던 지난 5일의 코스타에서의 시간은 

눈부신 <하나님의 나라>의 일견(Glimpse)을 보고 돌아 온 시간이었다. 

감사함이 깊은 곳으로부터 밀물처럼 내 온 몸을 적시며 차 오른다.


커피는 식었고 이제, 따사로운 나만의 공방으로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