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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눔지 기고글: 우크라이나에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선교의 현장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by 김성환 2009. 12. 5.


우크라이나에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선교의 현장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가 보지 못한 곳에 대해 이야기 들을 때 보통 두가지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그곳이 평상시에 가고 싶었던 매력있는 곳이라면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러나 그 곳이 평상시에 관심도, 지식도 없는 곳이라면 대개 시큰둥하지요

 

우크라이나에 다녀왔습니다!

 

라는 저의 말에 아마도 여러분의 반응은 후자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죠

이탈리아의 베니스도 아닌, 호주의 시드니도 아닌, 중국의 북경도 아닌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흥분된 목소리로 전합니다

 

 그곳에 가기 전, 저는 사실 그곳이 어디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진군하던 중, 우크라이나의 옥토를 보고 탐했다는 이야기와 독일군들이 우크라이나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동사한 것이 전세 역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를 얼핏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체르노빌 원전 폭파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이 우크라이나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91년도에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습니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 가운데 우크라이나 라는 공간에서도 동료피조물들이 살아왔지만 그들은 나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하지요? 그 땅은 저의 영적 시야를 한껏 확장시켜주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3 4일간의 말씀 집회를 했습니다. 같이 간 9명의 아름다운교회 선교팀은 환상의 드림팀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모두가 맡은 바 책임을 정교히 수행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초겨울의 추운 땅이었지만 내내 마음이 훈훈하였습니다

170명 남짓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참가하였습니다. 그 중 절반은 고려인 4-5. ‘조선’족도 아닌, ‘고려’인이라니, 심정적으로는 그들이 더욱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일제시대 때, 삶의 자유로운 터전을 찾아 한반도에서 북간도로 이주한 이들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고 하지요. 그들은 대한한공을 타고 기내식 비빔밥을 먹으며 삼소나이트 이민 가방에 짐을 꾸려 자발적으로 태평양을 건너 온 우리와는 사뭇 다른 고통의 이민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맑았습니다. 통역을 통한 설교여서 한 문장을 우크라이나어로 통역하는 동안 청중들의 반응을 좀더 여유있게 살필 수 있었습니다

강렬한 레이저 광선을 쏘여 시력이 회복되듯, 그들의 맑고도 강렬한 눈빛은 나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영적 라식 수술이었습니다. 삶의 크고 작은 시련들을 끊임없이 겪고 살아온 초췌한 얼굴이어서 더욱 빛났던 그들의 눈빛은 은하수의 별빛처럼 초롱스러웠습니다

 

은하수를 뒤로 하고 뉴욕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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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긴 이곳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별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뉴욕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한 주간 내내 먹구름에 비가 내렸습니다

소유의 욕망과 성공에 대한 집착, 도태의 두려움, 온갖 대결구조에 시달려 초췌한 뉴욕의 별들이 고급세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미끄러지듯 흘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파송받아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로부터